최근 몇년 간 글로벌 게임업계에서는 인수합병(M&A)을 통한 경쟁력 확보가 한창이다. 퍼블리셔(빅테크 업체)가 역량 있는 개발사를 선제로 발굴하고 인수하기 위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기도 하고, 대형 게임사는 보유한 플랫폼과 콘텐츠 등의 사업 확장 및 기술 획득을 위해 충분한 역량을 갖춘 중소 게임사를 산하로 편입시키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일반적인 M&A와 달리 인수되는 기업이 지닌 혁신성과 창의성을 유지될 수 있도록 독립적인 운영을 보장해 주고 있다.
특히 콘솔시장의 라이벌이라고 볼 수 있는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과 마이크로소프트(MS)의 엑스박스는 2022년 연초부터 100조원에 가까운 돈을 써가면서 독점작 확보와 함께 콘솔 게임 라인업을 다지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이들의 목표는 다양한 플랫폼 상에서 전개되는 게임 시장의 주도권을 선점하고 메타버스 등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시대에 대응하는 것이다.
네가 인수하면 나도 인수한다
소니 인터액티브 엔터테인먼트(SIE)는 지난달 31일 미국 게임 개발사 번지를 36억 달러(약 4조3600억원)에 인수했다. 번지는 FPS(1인칭 슈팅 게임) ‘헤일로 시리즈’와 ‘데스티니 시리즈’의 제작사로 1991년 설립되어 2000년 MS에 인수됐다가 2007년 독립했다.
소니는 플레이스테이션 공식 블로그에서 이번 번지 인수에 대해 “(번지가 가진) 멀티플랫폼 개발과 라이브게임 서비스에 대한 전문성이 많은 게임 유저에게 플레이스테이션 경험을 선사하고자 하는 우리의 비전에 도움이 되리라고 보았다”고 밝혔다.
이번 인수는 헤일로 시리즈가 엑스박스에서 차지하는 상징성 때문에 많은 화제를 모았다. 헤일로 시리즈는 엑스박스가 콘솔시장에 도전하던 초기 독점작 라인업을 지탱해주면서 명작으로서 수많은 팬층을 쌓아왔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MS의 액티비전-블리자드 인수에 대응하고 플레이스테이션에서 새로운 AAA급 FPS 타이틀을 출시하기 위해 이번 인수를 진행했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관측이 나오는 이유는 MS가 지난달 18일 액티비전-블리자드를 인수함에 있어서 ‘역대급 빅딜’로 불릴 정도로 M&A 역사상 최고가 신기록을 세웠기 때문이다. MS가 쓴 인수 비용은 687억 달러(약 82조원)으로 4일전 14일 종가에 45%의 프리미엄을 붙여 구매했다. 게다가 이 금액이 MS 본사가 아닌 MS 게이밍 엑스박스팀의 자금으로, 전액 현금으로 지불되었다는 사실이 시장에 충격을 더했다.
문제는 액티비전-블리자드의 타이틀 중 ‘콜 오브 듀티 시리즈’가 엑스박스로 넘어갔다는 데 있다. 해당 시리즈는 서구권, 특히 미국에서 인기 최상위권을 다투는 FPS 게임으로 매년 신작을 출시하고 있으며 멀티 플랫폼으로 출시되고 있다. 하지만 기존 MS의 산하로 인수된 개발사가 유명 시리즈의 신작을 멀티 플랫폼으로 출시한 전례가 없어 콜 오브 듀티 시리즈도 사실상 엑스박스 독점작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는 시장 점유율이 흔들릴 수도 있는 상황이다. 현재 콘솔시장의 점유율은 플레이스테이션이 약 70%, 엑스박스가 25%를 점유하고 있어 MS가 불리한 상황이다. 그러나 이번 콜 오브 듀티 시리즈처럼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즐길 수 있던 게임들을 엑스박스가 계속 가져가는 상황이 나오게 된다면 소니 입장에서는 점유율 구도가 깨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형성될 수 있다.
특히 MS는 1년 전인 2020년 9월에도 ‘엘더스크롤 시리즈’, ‘둠 시리즈’, ‘폴아웃 시리즈’를 보유하고 있는 제니맥스 미디어를 75억 달러(8조 8050억 원)에 인수해 플레이스테이션으로부터 뺏어온 전력이 있다.
실제로 이같은 위기감은 주가에 영향을 주어 해당 인수 소식이 들려온 후 소니 주가가 하루 동안 12% 넘게 하락하기도 했다. 현재는 번지 인수 소식과 함께 3.7%가량 상승한 상태다.
클라우드 구독 경제를 위한 게임 확보 전쟁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소니와 MS의 인수를 분석하면서 “콘솔 게임 업계가 구독 모델 확대라는 중요한 시기를 맞이하는 가운데 게임 타이틀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현재 양사의 관심사는 차세대 게임 플랫폼으로 떠오른 클라우드 게임시장이다. 클라우드 시장에서는 기기에 의존하던 기존 콘솔 시장과는 다르게 서버 자체에 수많은 게임 타이틀을 저장할 수 있고, 타 플랫폼 게임 유저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어 게임사 뿐만 아니라 게임을 제공할 수 있는 통신사나 게임스토어, 플랫폼 및 클라우드 업체도 뛰어들고 있다.
양사는 클라우드 플랫폼에서 구독 서비스를 통해 이용자를 늘려가는 중이다. MS는 월정액 기반의 게임 유통서비스인 ‘엑스박스 게임패스’를 통해 콘솔 게임을 스마트폰에서 즐길 수 있도록 제공하고 있으며 소니는 ‘플레이스테이션 플러스’를 통해 모바일과 PC 환경에서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도록 제공하고 있다. 양 서비스의 글로벌 이용자 수는 각각 2500만명(MS)과 4700만명(소니) 수준으로 웬만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수준에 가깝다.
이러한 상황에서 양사가 해야할 일은 다양한 콘텐츠의 제공으로 귀결되게 된다. 특히 다양성과 개성이 확보됨과 동시에 이를 다른 동종 서비스에서는 볼 수 없도록 하여 경쟁력을 확보해야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양사는 거의 긁어모으다시피 유명 IP를 보유한 게임사나 전도유망한 신생 개발사를 산하로 흡수하여 시장 주도권을 잡기 위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
또한 메타버스로 대표되는 미래 게임 생태계 구축을 위해서도 대응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가진 게임사들이 러브콜을 받고 있다. 특히 MS는 이번 액티비전-블리자드의 인수 배경에 메타버스 구축이 결정적이었다고 밝혔다. 인수 발표 당시 진행된 투자자 대상 컨퍼런스에서도 사티아 나델라 MS CEO와 바비 코틱 액티비전 CEO, 필 스펜서 MS 게이밍 총괄의 입을 통해 메타버스의 중요성이 끊임없이 강조됐다.
필 스펜서는 “MS의 메타버스 비전은 강력한 프랜차이즈에 뿌리를 내린, 상호 교류하는 글로벌 커뮤니티다”면서 “이번 인수를 통해 우리의 메타버스 연구 접근이 더욱 강화될 것이다”고 밝혔다.
국내에서도 M&A 통한 미래 대비 중
이러한 M&A 움직임은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당장 ‘GTA(Grand Theft Auto)’와 ‘문명’ 시리즈를 개발하는 ‘테이크투 인터랙티브’도 지난달 10일 모바일 게임 ‘팜빌’의 개발사 징가를 127억 달러(15조 2000억원)에 인수했다. 소니와 MS를 합치면 약 850억 달러(102조 7650억원)에 달하는 돈이 1개월 만에 시장에서 움직인 것이다.
국내에서도 M&A를 통한 신규 IP 및 산하 개발인력, 기술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당장 크래프톤, 넥슨, 위메이드, 넷마블 등이 메타버스·블록체인 등 신성장동력 강화를 위해 수천억 원의 대형 M&A를 추진하고 있으며, 목표에 따라 게임 개발사 뿐만 아니라 메타버스나 다른 콘텐츠 기업 등 시너지가 나는 분야를 모두 눈독들이고 있다.
이 중 넷마블은 지난달 12일 블록체인 기반 개발사인 아이텀게임즈를 약 76억 5000만원에 인수해 모바일 게임에 P2E(Pay to Earn) 시스템을 단기간에 적용하는 미들웨어 기술을 확보했으며, 지난해 8월에는 글로벌 소셜카지노 게임업계 3위 업체인 스핀엑스를 약 2조 5000억원에 인수해 국내 게임업계 최고가를 기록했다.
넷마블의 목표는 자체 가상자산(코인)을 비롯해 거래소에 이르는 밸류체인을 구축하는 것이다. 즉 P2E와 NFT(Non Forgible Token) 등 미래 게임 생태계의 일각인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사업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관련 기술을 소지하거나 활용하기 좋은 IP를 보유한 업체들을 인수하거나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권영식 넷마블 대표는 지난달 NPT(Netmarble Together with Press)에서 “넷마블에서 준비 중인 블록체인 기술과 게임 NFT 관련 사항 등을 설창환 CTO(Chief Technology Officer)가 개발 중이며, 사업적인 면에서는 신사업 조직을 구성해서 제가 직접 리딩하고 있다”면서 “P2E를 통한 코인 및 NFT 연계, 각 캐릭터의 NFT화와 거래, 코인 발행 후 거래 및 생태계에 관한 관리 등을 준비 중이다”고 강조했다.
이외에도 넥슨은 지난달 5억 달러(약 6000억원)를 투입해 할리우드 영화 ‘어벤져스’ 제작사 AGBO의 2대 주주가 됐으며 위메이드도 선데이토즈를 1367억원에 인수하고 NFT 기반 소셜 카지노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크래프톤은 지난해 10월 미국 게임 개발사 언노운월즈를 5억 달러에 인수했다.
소비자경제신문 권찬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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