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상의 이유 등으로 인해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양해와 도움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혼자 앓다가 결국 일도, 나 자신도 망치는 것보다 내 상황을 분명하게 전달하고 미리 함께 일을 조율하는 것이 모두를 위해 훨씬 현명한 선택인데도 생각보다 입을 여는 것이 쉽지 않았다. 혼자 끙끙 거리며 무리하는 것보다 주변의 도움을 구하는 것이 더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다. 서로 돕고 도우며 사는 것이라고들 하는데 도움을 구하는 행위는 왜 이렇게 어색하게 느껴지는 걸까.
이는 일면 문화적으로 도움을 구하는 행위를 권장하지 않는 환경에서 자라온 탓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동양 문화권의 사람들이 서양 문화권의 사람들에 비해 도움을 구하기를 어려워하고 도움을 요청했을 때 부채감을 훨씬 크게 느낀다는 연구들이 있었다.
반대로 미국 사람들은 다른 문화권 사람들보다 특히 질병이나 장애 같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 도움을 구하는 것을 자신의 권리로 보는 듯 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기에 당당하게 요청하고 반대로 타인이 요구했을 때에도 크게 거부감 없이 요구를 들어준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아무런 부채감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도움을 요청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정도가 비교적 덜 하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 서로 어느 정도 선에서의 배려를 당연하게 여기는 환경보다는, 힘들어도 꾹 참고 혼자 어떻게든 버티고 그러다가 나가떨어지기라도 하면 패배자라는 낙인이 찍히는 환경이 좀더 익숙한 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아는 선생님으로부터 “동료들의 존재 이유는 누군가 힘들어할 때 돕기 위함이며 도움을 구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도, 잘못된 일도 아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던 이야기지만 직접 들었을 때 왠지 더 용기가 나서 최근에야 필요한 절차를 밟을 수 있었다.
다시금 생각해 보니 결국 내가 망설였던 가장 큰 이유는 “주변 사람들이 나를 무능하고 징징거리기만 하는 사람으로 볼 것 같아서”였다. 도움을 구하는 순간 나의 약점들이 만천하게 드러나고 기대를 져버릴 것만 같다는 두려움이 마음 속에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
물론 약한 소리를 하게 되는 상황인 만큼 약한 인간으로 보이게 될 거라는 두려움과 겉과 다른 나의 속 사정을 알려야 한다는 데서 오는 민망함 등이 밀려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절대 약해보이면 안 된다는 암묵적인 규칙이 지배하고 있는 사회에서 약한 소리를 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 것이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과 민망함의 벽을 넘지 못하고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옆에 있어도 도움을 구하는 데 실패하고 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장벽의 존재를 잘 모르고 있다. 나 역시 일련의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도움을 구하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운 일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토론토대의 심리학자 바네사 본스의 연구에 의하면 특히 도움을 '주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이러한 어려움의 존재를 잘 인지하지 못하고, 따라서 도움 요청 확률을 효과적으로 늘리지 못하는 편이다.
연구자들은 사람들에게 '멘토 또는 상사' 또는 '신입 직원'의 관점으로 잘 모를 때면 꼭 도움을 요청하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읽게 했다. 하나는 질문을 하거나 조언을 구하면 멍청하고 무능하게 보일 것 같다는 걱정은 하지 말고 어색해도 계속해서 조언을 구하라는 메시지였고 다른 하나는 조언을 구하는 것이 실적 향상에 도움이 될 거라는 메시지였다. 연구자들은 둘 중 어떤 메시지가 더 신입 직원들로 하여금 실제 도움을 구할 확률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지 평가해보라고 했다.
그 결과 상사의 관점에서 생각했던 사람들은 도움 요청에 실질적인 이득이 있다는 메시지가 더 도움 요청 확률을 높일 것이라고 평가한 반면 부하 직원의 입장에서 평가한 사람들은 도움 요청의 이득을 강조한 메시지보다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움을 요청해 달라고 말한 메시지가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의 입장에 있었던 사람들은 약점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민망함을 줄여주는 것이 실제 도움 요청 확률을 늘릴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민망함은 많은 경우 사회적 규범에서 벗어나는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판단이 들 때 느껴지는 감정이다. 학교나 직장 등에서 잘 모르는데 질문하기 두려워서 적절한 도움을 받지 못하고 넘어가는 행위가 초래하는 비용을 계산해보면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주변에 이러한 이유로 간단한 도움도 요청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부끄러워할 필요 없다고, 우리 모두 살다보면 언젠가는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고 이는 네 탓도 내 탓도 아닌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서로에게 이야기해줄 수 있다면 좋겠다.
※관련기사
Bohns, V. K., & Flynn, F. J. (2010). “Why didn’t you just ask?” Underestimating the discomfort of help-seeking. Journal of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 46(2), 402-409.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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