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 대한 위기의식도 심화
인류가 멸망해도 지구는 존재
제한된 조건 속 영위 고민해야
“1957년, 인간이 만든 지구산 물체 하나가 우주로 발사됐고 태양, 달 그리고 뭇별을 회전시키는 것과 동일한 중력 법칙에 따라 몇 주 동안 지구 궤도를 돌았다.”
저명한 정치철학자 해나 아렌트는 대표작 ‘인간의 조건’을 이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 ‘지구산 물체’는 구소련에서 발사한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다. 아렌트는 인류가 최초로 지구 밖 에서 지구를 바라본 이 사건 이후 인류는 지구에만 머무르고자 하지 않고 새로운 운명과 맞닥뜨리게 될 것이라 예언했다. 스푸트니크 1호 발사 성공에 충격받은 미국은 1969년 아폴로 11호를 달에 착륙시켰고 화성, 목성, 토성 등 태양계 탐사를 지속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무인 로버 퍼시비어런스호를 화성에 착륙시켜 과학적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CEO는 수십 년 내에 민간 자본으로 우주여행과 달·화성으로의 이주를 추진 중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지구에 대한 체계적 이해가 우주시대 개막 이후에나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는 사실이다. 지구에 대한 이해는 고체 지구의 순환 이론인 판구조론의 수립을 경계로 이전과 이후로 구분된다. 그런데 판구조론은 1960년대에 이론적 근거가 마련되고 1970년대 초반에나 보편적으로 인정된다. 그 이전까지 인류는 히말라야 산맥은 왜 높은지, 지진은 왜 일어나는지, 화산 폭발은 왜 일어나는지, 남극과 북극이 왜 얼어붙었는지 체계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을 갖고 있지 못했다. 왓슨과 크릭의 DNA 분자 구조 모델 규명이 1953년이었던 걸 생각하면 매우 늦은 셈이다.
우주시대 개막과 더불어 지구의 위기에 대한 의식 역시 심화된다. 스푸트니크 1호 발사 성공 몇 달 후, 미국의 대기과학자 찰스 킬링은 하와이와 남극에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매일 측정하는 기나긴 여정을 시작한다. 자료가 누적돼 감에 따라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났고 1970년대 중반에 이르러 이 현상은 인류의 화석연료 소비 증가에서 기인한 것이며 그 결과 지구가 뜨거워져 인류의 생존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경고등이 켜졌다. 1963년 레이철 카슨은 ‘침묵의 봄’ 출간을 통해 인간이 만든 화학 물질인 DDT가 지구를 죽음의 행성으로 바꿀 수 있다고 경고했으며 이를 계기로 전 지구적 환경운동이 본격화됐다. 1972년에는 자원고갈과 환경오염으로 인류의 성장에는 한계가 있다는 로마 클럽 보고서가 나왔다.
우주시대의 개막과 더불어 지구에 대한 이해와 위기의식이 동시에 심화된 것은 인간이 우주의 시점에 설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지구의 위기라고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위기의 주체는 지구가 아닌 인간이다. 지구는 인간이 존재하기 이전에도 존재했고 인류가 멸망한다 해도 오랜 기간 더 존재할 것이다. 지구의 위기는 인류가 만들어낸 인류의 위기인 셈이다. 인류는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지구를 떠날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일까? 현재 기술 수준에서 다른 행성으로 대규모 거주 이전이 아주 먼 미래임은 긴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다른 행성으로의 이주가 가능한 시기가 온다고 할지라도 지구는 가장 중요한 거주처로 남을 것이다. 결국 인류에게 주어진 화두는 ‘지구라는 제한된 조건에서 삶을 어떻게 영위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에 구체적인 답을 준비하는 것이다. 이 문제에 올바르게 답하기 위해서는 지구와 우주 그리고 인간을 다양한 각도에서 더 정확하게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구의 자원은 무한하다는 낙관론과 막연한 불안감을 부추기는 지구에 대한 공허한 신비화도 경계해야 한다. 인류가 체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시대는 인간, 지구 그리고 우주에 대한 새로운 물음과 통찰을 요구하고 있다.
극지연구소 지권연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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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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