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톰 행크스 주연의 영화 ‘설리’에서 비행기 비상 착륙 사건의 배경이 되는 뉴욕의 허드슨강. 사실 이곳은 오래전부터 달을 보는 명소로 유명했다. 의사이자 천문 관측이 취미이던 존 윌리엄 드레이퍼는 허드슨 강변에 망원경을 모아놓은 작은 천문대를 만들었고, 1840년 처음으로 망원경을 통해 달 사진을 찍었다. 그와 똑같이 의사이자 천문 관측 취미까지 물려받은 그의 아들 헨리 드레이퍼도 허드슨 강변의 천문대에서 많은 밤하늘 사진을 남겼다.
헨리 드레이퍼는 밤하늘 사진 수천여 장을 남겼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오리온자리의 대성운을 담은 사진이다. 당시 그는 11인치 반사 망원경으로 우주를 담았다. (망원경 제작자로도 이름을 날린 천문학자 앨번 클라크가 만든 망원경으로! 드레이퍼는 취미 생활 한번 정말 제대로 했다.) 드레이퍼는 1880년 9월 30일, 총 50분의 노출을 통해 최초의 오리온성운 사진을 찍었다. 투박하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오리온성운과 밝은 별의 모습이 어렴풋하게 느껴진다. 이후에도 드레이퍼는 자신의 관측 장비를 계속 개선했다. 그리고 1882년 3월 14일, 앞선 사진의 두 배를 넘는 137분의 노출을 통해 더 선명한 오리온성운의 사진을 찍었다. 드레이퍼가 남긴 이 사진들은 지금까지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망원경으로 촬영한 오리온성운 사진이다.
드레이퍼의 첫 촬영 이후 140년이 지났다. 그리고 이제 인류는 지름 6.5m 크기의 거대한 우주 망원경으로 드레이퍼가 봤던 곳을 바라보고 있다. 며칠 전 제임스 웹으로 담은 오리온성운의 모습이 공개되었다. 과연 이 사진 속에는 어떤 비밀이 담겨 있을까?
제임스 웹으로 관측한 오리온성운 사진에 담긴 놀라운 형체의 정체를 소개한다.
겨울철 밤하늘에 떠있는 사냥꾼 오리온자리의 가랑이 사이 다소 거시기한 방향을 보면 무언가 뿌옇게 빛나는 걸 볼 수 있다. 바로 새로운 별들이 한창 태어나고 있는 오리온성운이다. 이곳은 지구에서 약 1300광년 정도,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떨어진 아주 거대한 별 탄생 지역 중 하나다.
특히 오리온성운의 가장 밝은 중심부에서 별들이 바글바글 모여 태어나고 있다. 이곳은 트라페지움 성단이라고 부른다. 태양보다 훨씬 무겁고 뜨거운 어린 별 수천 개가 고작 4광년 범위 안에 한데 모여 함께 태어나고 있다. 4광년이면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이웃 별 프록시마 센타우리까지의 거리 정도다. 우주적으로 봤을 때 정말 얼마나 좁은 범위에 별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는지 실감할 수 있다. 특히 트라페지움 성단에서 가장 뜨겁고 무거운 별 θ(세타)1 오리온자리 C 혼자서 사실상 이 아름다운 오리온성운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이 별은 우리 태양에 비해 약 30배 무겁다. 그만큼 사방으로 막대한 자외선 빛과 항성풍을 토해낸다. 그리고 자신을 태어나게 해준 주위의 성간 물질, 가스 구름을 밀어내며 지금의 둥근 동굴 같은 성운을 만들었다.
이번 관측에서 제임스 웹은 특히 오리온성운의 한가운데를 지나가는 긴 먼지 장벽, 오리온 막대(Orion Bar) 쪽을 겨냥했다. 제임스 웹이 촬영한 사진 속에서 아기 별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는 트라페지움 성단은 사진의 오른쪽 위쪽 방향 바깥에 놓여 있다. 성단 속 어린 별들의 강렬한 별빛에 의해 먼지가 왼쪽 아래로 불려나가면서 긴 먼지 장벽이 만들어졌다.
사진 속 오리온 막대 바로 아래 가장 밝게 빛나고 있는 별은 트라페지움 성단 멤버 중 하나인 θ2 오리온자리 A다. 별을 에워싼 가스 구름이 유난히 붉게 빛나고 있다. 이는 주변 먼지 구름에 곧바로 별빛이 반사된 모습을 제임스 웹이 적외선 파장으로 관측했기 때문이다.
그 왼쪽 위를 잘 보면 더 최근에 태어난 별의 탄생 순간을 볼 수 있다. 둥글게 반죽된 먼지 구름 구체 안에서 밝게 빛을 내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별이 보인다. 제임스 웹이 먼지 구름을 꿰뚫고 그 내부를 볼 수 있게 해주는 적외선 파장으로 관측한 덕분에 구름 속에 숨어 막 태어나고 있는 별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앞선 허블 관측과 비교해도 이전에는 잘 보이지 않았던 많은 별들이 제임스 웹의 사진 속에서는 더 선명하게 빛나고 있다.
그런데 같은 영역을 허블과 제임스 웹으로 찍은 사진을 비교해보면, 더 선명하게 빛나는 별들 뿐 아니라 사진 가운데를 비스듬하게 지나가는 오리온 막대의 위치가 살짝 달라보인다. 그래서 얼핏 생각하면 그 사이에 이 먼지 띠가 흘러가면서 실제로 자리가 바뀐 게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진 않다. 앞서 다른 글에서도 설명했듯이 고작 20~30년 사이에 가스 구름의 모양과 분포가 눈에 띄게 변하지는 않는다.
이런 차이가 보이는 이유는 허블과 제임스 웹이 관측 파장의 차이로 인해 종류가 조금 다른 먼지 입자를 보기 때문이다. 가시광선과 자외선을 봤던 허블은 별빛을 받아 이온화된 뜨거운 가스 구름의 분포를 바라봤다. 반면 더 에너지가 낮은 적외선만 바라보는 제임스 웹은 훨씬 온도가 미지근한 탄화수소 계열의 먼지 입자들을 찍는다. 그래서 허블과 제임스 웹의 사진을 잘 보면, 제임스 웹 사진에 담긴 먼지 띠가 트라페지움 성단에서 더 멀리 떨어져 분포한다. 성단 속 뜨거운 별에서 좀 더 멀찍이 떨어져 있어서 좀 더 온도가 미지근한 먼지만 봤기 때문이다.
똑같이 적외선 파장으로 오리온을 관측했던 선배 스피처 망원경의 사진과 비교해보면 제임스 웹의 성능을 더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제임스 웹은 스피처와는 차원이 다른 선명한 분해능으로 가스 필라멘트와 어린 별들의 모습을 모두 담고 있다. (참고로 두 사진에서 별 중앙에 검은 구멍이 찍힌 것은 중심 별빛이 너무 밝아서 과노출된 것이다.) 이 경우에는 스피처와 제임스 웹 둘 모두 비슷한 적외선 파장을 관측했기 때문에 사진에 담긴 가스 먼지 띠의 분포에 큰 차이가 없다.
오리온성운에서 태어나고 있는 건 별뿐만이 아니다. 그 주변 어린 행성계도 함께 태어나고 있다. 제임스 웹은 그 놀라운 현장도 함께 포착했다. 사진 오른쪽 위를 들여다보면 위아래로 긴 제트를 토해내며 빠르게 돌고 있는 납작한 먼지 원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갓 태어난 어린 별 주변에 형성된 먼지 원반이다. 함께 표시된 해왕성 궤도 크기와 비교하면 이곳에서 태어나고 있는 어린 행성계의 사이즈를 가늠해볼 수 있다. 그런데 주변에 있는 다른 뜨겁고 어린 별들의 강한 빛으로 인해 제트도 불려 나가면서 휘어진 모습까지 볼 수 있다. 이렇게 밝은 별빛, 복사 에너지에 의해 불려 날아가는 현상을 광-증발 현상이라고 부른다.
이미 허블 망원경 관측에서도 오리온성운에서는 어린 행성계들이 통째로 반죽되는 현장이 많이 발견되었다. 중력 수축을 통해 둥글고 작게 뭉쳐진 먼지 구름 덩어리 안에서 별을 감싸고 있는 납작한 먼지 원반의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를 프로플리드(Proplyd)라고 한다. 지금까지 오리온성운 안에서만 180개가 넘는 프로플리드가 발견되었다. 재밌게도 많은 프로플리드는 마치 혜성처럼 한쪽으로 길게 꼬리가 흐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주변에서 밝게 빛나는 어린 별빛에 의해 불려나가는 가스 물질이 어린 별을 지나가면서 생긴 흔적이다. 우리 태양과 지구도 50억 년 전 바로 이런 모습을 거쳤다.
제임스 웹은 또 다른 멋진 별 탄생 지역을 바라봤다. 우리 은하 바로 옆 16만 광년 거리에 떨어진 이웃한 작은 은하 대마젤란운에 있는 독거미 성운이다. 그 거리를 감안하면 이 거대한 사진에는 무려 340광년 너비의 성운이 담겨 있다. 오리온성운에서와 마찬가지로 먼지 구름을 꿰뚫고 그 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적외선으로 바라본 덕분에 제임스 웹은 기존의 허블 관측에선 볼 수 없었던 수천 개의 새로운 어린 별들을 확인했다. 특히 천문학자들은 바로 이 독거미 성운이 지금으로부터 100억 년 전, 태초의 1세대 별들이 탄생했던 ‘우주의 새벽’ 직후 연이어 2세대 별과 은하들이 폭발적으로 탄생했던 시기인 ‘우주의 정오’에 가장 가까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고 추정한다. 그리 멀지 않은 가까운 이웃 은하 속 별 탄생 지역에서 오늘날의 우주를 비추고 있는 대부분의 별들이 처음 탄생한 순간의 모습을 추억할 수 있는 정말 중요한 타깃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오리온성운 관측을 진행한 연구팀에서 공개한 재밌는 사진 한 장과 함께 마무리하겠다. 이 사진은 제임스 웹에 있는 적외선 이미징 관측 장비 NIRCam을 통해, 오리온성운의 북쪽 지역을 동시에 촬영해서 얻은 사진이다. 마찬가지로 길게 흐르는 먼지 구름 속에서 밝게 빛나는 아기 별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치 크리스마스 트리에 조명이 걸려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잘 보면 사진 아래 오른쪽에서 개구리(?) 한 마리도 찾을 수 있다.
허드슨 강변에서 한 천문학 덕후가 촬영했던 흐릿한 오리온성운의 사진. 그리고 제임스 웹이 다시 같은 곳을 바라보며 담아낸 사진. 불과 140년 사이에 인류가 우주를 바라보는 눈은 완전히 달라졌다. 제임스 웹은 먼 우주 끝자락을 보며 우주 자체가 시작된 순간을 바라본다. 먼지 구름의 번데기 속을 꿰뚫어보며 그 안에서 부화하고 있는 어린 별의 첫 시작을 바라본다. 제임스 웹은 우리에게 ‘우주의 점화’ 순간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참고 https://pdrs4all.org/pdrs4all-first-images-release/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galaxy.wb.z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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