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제3회 BTS 국제학술대회가 열렸다. 농인을 대변하는 아미,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는 아미, 지구 환경 활동을 하는 아미 등 24개국의 다양한 아미들이 한국에 모였다. 방탄소년단 팬 활동이 사회활동과 지적 각성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이전 학술대회에선 영어를 썼지만 이번엔 다양한 언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백인중심주의 체제에 균열을 낸 방탄소년단의 의미를 반영해, 학술대회 언어도 영어에서 탈피했다는 것이다. 방탄소년단은 ‘나 자신을 사랑하자’고 주장했었는데, 참가자들도 거기에 맞춰 자신들의 언어를 사용했다.
방탄소년단은 ‘너 자신을 말하라’는 메시지도 보냈는데, 이로 인해서 지구촌 곳곳의 아미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게 됐다. 예를 들어 브라질 아미들은 ‘Army Help The Planet(AHTP)’ 운동을 전개한다. 2019년 대화재로 아마존 열대 우림 황폐화 위기를 맞았는데, 이 사실을 세계에 알려 경각심을 높이고 현지에서 아마존 보존 캠페인 등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이런 운동이 코로나19 때는 의료 물자 지원을 위한 긴급 자금 모금 캠페인으로까지 발전했다. 더 나아가 투표 독려 운동으로 이어졌는데, 아미의 이런 활동 후에 실제로 브라질 청년들의 유권자 등록률이 올라갔다고 한다.
학술대회에서 이런 움직임을 알린 브라질 참가자는 “한국의 일곱 소년은 예술을 통해 전 세계 수백만 명을 감동시켰고, 모든 사람이 언어, 인종, 성별, 나이, 종교적 신념의 장벽을 극복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사용하도록 격려했다”며 “아미는 그들의 목소리가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사회 변화를 위한 강력한 네트워크를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필리핀 아미들은 선거에 뛰어들었다. 독재자의 아들이 출마하자 그에 맞서 다른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한 유세에 나섰다는 것이다. ‘필리핀 대선에서 아미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발표한 라살대학교의 노엘 교수는 “아미는 청춘의 대표이자 현 세대에 목소리를 내는 청년들이기도 하다. 아미로 활동하면서 우리는 사회적 인식을 갖고 성장과 희망이라는 주제로 활동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방탄소년단이 소수자, 타자, 약자의 친구이자 대변자의 위상이고,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나를 사랑하고 나 나신의 목소리를 내자’고 격려했기 때문에 지구촌 곳곳의 아미들이 사회적 목소리를 내게 된 것이다. 미국에서도 일부 아미들의 정치적 움직임이 있다고 알려졌다.
이런 거대한 움직임의 중심에 있는 스타이기 때문에 유엔에서 연설을 하고, 백악관에도 초대받게 된 것이다. 단지 인기가 많은 아이돌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방탄소년단은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자는 국제적 움직임을 촉발하기도 했다. 인도네시아, 미얀마, 홍콩 등의 시위 현장에서 방탄소년단의 ‘Not Today’가 울려 퍼지기도 했다.
이 정도의 영향력을 가진 스타는 서구에서도 드물다. 그런 스타가 한국에서 나온 건 정말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기적이다. 방탄소년단이 현재 활동중단을 선언한 상태이지만 국제적 영향력은 현재진행형이다.
방탄소년단 측이 향후 팀 활동으로의 복귀를 암시하긴 했지만 현재로선 전망이 불투명하다. 개인 활동은 이어지겠지만 팀 활동보다는 폭발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 기적 같은 팀의 여정이 여기서 불확실해지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예단할 순 없지만, 다만 방탄소년단이 조금 더 팀 활동에 대해 가볍게 여기면 좋겠다. 얼마 전 방탄소년단은 지쳤다는 이야기와 함께, 정체성 혼란이 와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도 했었다. 무거운 메시지를 내다가 ‘다이너마이트’, ‘버터’ 같은 가벼운 노래를 하려니 혼란이 왔다는 것이다.
메시지에 대한 중압감이 있기 때문에 그런 혼란도 겪었을 것이다. 그냥 가볍게 음악하는 태도였으면 혼란에 빠질 일이 없다. 가벼운 노래 때문에 혼란을 느낄 정도로 메시지에 중압감을 느끼는 것이 더욱 그들을 지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 중압감이 있으면 앞으로도 선뜻 팀 활동을 하기가 어렵다. 사실 앞에서 언급한 사회적 반향, 학술대회 같은 것도 방탄소년단에겐 부담스러울 수 있다.
이런 부담감, 중압감에서 벗어나 가볍게 음악하는 태도라면 방탄소년단 활동도 더 원활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가볍게 음악한다고 해도 방탄소년단이 지금까지와 180도 다른 길을 갈 리는 없기 때문에, 그들의 활동 그 자체로 그들의 국제적 영향력은 유지될 것이다. 메시지도 적당한 선에서는 활용할 수 있다.
학술대회 같은 것도 중요한 의미가 있으니 당연히 사회적으론 조명해야겠지만, 방탄소년단 자신은 이러 학술대회도 잊고 홀가분한 상태이길 바란다. 이렇게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면 방탄소년단 활동의 가능성이 조금 더 커지고, 그래서 만약 팀 활동이 성사된다면 그들의 기적적인 국제적 존재감도 더 커지지 않을까.
글/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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